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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왜 북한의 무력침략에 사과 배상 요구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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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8일 “우리 외교부가 집계한 일본의 우리에 대한 공식 사과가 20차례가 넘는다”고 밝혔다.


일본이 한국에 언제까지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하겠다. 일본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사과를 20여 차례를 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굴욕외교라는 이재명과 토착공산당들은 북한의 무력 침략에 사과나 배상을 요구해 본 적 있는가?


김 1차장은 이날 YTN 출연에서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과 강제 징용 해법안과 관련 일본이 과거사를 사과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물음과 관련 이 같이 대답했다.


김 차장은 그러면서 “2015년도 위안부 합의에서는 이것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조치다라고까지 얘기했는데 또 이렇게 민사소송으로 강제징용 문제의 응어리가 남아 있다 보니까 당연히 우리 국민으로서는 일본이 다시 한 번 과거의 그런 언급들을 재확인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정상회담에 임할 때 적어도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참모진 그리고 외교부의 입장은 사사건건 우리가 하나 뭘 할 테니 당신네 일본 정부는 이걸 해 다오라는 식의 접근을 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선 우리가 국내 정치에서 취할 수 있는 한일관계의 걸림돌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테니 일본 당신들도 이것을 바라보면서 서로 각자의 그동안 입장을 심사숙고하고 그런 필요한 조치를 앞으로 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는 정도가 우리의 입장이었다”고 했다.


김 차장은 다만 “2015년도 한일 위안부 합의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이 당시 외무상이었던 기시다 총리”라며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그대로 낭독했고, 정확히 3년 뒤에 우리나라가 화해 치유재단을 해체해 버렸다”고 했다. 


김 차장은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0억원(10억엔) 중 56억원이 남아있으며 나머지 돈은 당시 위안부 생존자 47명 중 35명에게 지급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합의가 현재도 유효하다는 정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김 차장은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묻자 “사실 일본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일본)로서는 이것이 학수고대하던 해법인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김 차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이 마련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과 관련, “게이단렌의 돈에 이미 2개 피고 기업이 낸 돈이 일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상화 등 안보 협력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궤적, 고도, 탄착지점 등 미사일 정보를 한미일이 공유해야 할 것이고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사이버 위협에 대해서도 한미일이 공조 방안을 강화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이 사과를 해도 해도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사과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 같아도 다시는 사과하지 않겠다. 일본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20여 차례 과거사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다.


그렇다면 野들과 이재명에게 묻겠다.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 전쟁에 대해서 북한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부터 밝혀보기 바란다. 왜 북한이 남침을 해서 우리 국토와 국민과 재산을 유린한 침략행위에는 사과나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지 그 이유가 무엇을 말해줄까? (혹시 토착공산당들이라서) 그런가?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 이재명과 野들은 북한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부터 밝혀라! 왜 현재와 가장 가까이 일어난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사과나 배상을 요구도 못하면서 최소 78년 최대 100년 이상 된 과거사에 일본에게 줄기차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짓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면서 왜 이재명과 野들은 북한에게는 73년 전의 남침과 13년 전의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 적이 있느냐 말이다. 북한의 1960~1970년대의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수 많은 국민들이 희생을 당했다. 


이승복군은 1968년 12월 9일날 자신의 9살 생일날 북한 무장공비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했다고 입이 찢어지는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이런 일련의 북한 도발 만행에 대해서 이재명과 野들은 사과나 배상을 요구한 적이 있었는지부터 말을 해보기 바란다. 


왜 북한에게는 사과나 배생을 요구하지 못하면서 만만한게 홍어 거시기라고 일본에게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면서 반일 선동을 하는 것인지 그것에 대해서 전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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