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최전성기와 몰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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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왕건의 부하인 신숭겸의 희생으로 겨우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함)
한반도 남부의 전라도, 충청도, 그리고 경상도 상당수 지역 을 제패하고
사실상 생산력이 가장 좋은 노른자 땅을 모조리 차 지하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신숭겸 충렬도-
견훤은 왕건에게
"내가 바라는 것 은 평양의 누각에 활을 걸고 패강의 물을 말에게 먹이는 것 "이라고
대 견훤기고려왕서 (代甄萱寄高麗王書)라는 서신을 보내
대 놓고 협박하며 삼한에서 가장 강하고 무서운 존재가 됐음을 알렸지만
얼마 안 가 견훤에게 잔뜩 겁을 먹었던 왕건은
당대 최강의 먼치킨이었던 고려의 용장 유금필의 설득과 조언 을
(유금필은 북번의 여진족 제압 후 대 추장 타이틀을 얻고 그들을 기병으로 부리기도 함.)
잘 새겨듣고 고창 전투에서 고려군을 미리 유리한 지형에 배치했고
전투가 벌어지자 유금필의 정예 기병 돌격으로
후백제군은 역 으로 박살이 나 버리면서 삼한의 힘의 균형이 깨짐.
-고려 정예 기병의 돌격-
이 전투 한 번으로 후백제는 상주를 고려에 빼앗기고
소백산 일대 를 전부 잃어버리며 신라와 양주에 대 한 영향력도 상실함.
그냥 삼한의 주도권이 고려로 거의 다 넘어가 버리게 되는 결과를 맞이함.
-영토를 상당히 많이 잃은 것 이 보인다-
게다가 고려는 북쪽에서 남하하는 발해 유민들의 유입으로 인구가 꾸준히 보충됨.
후백제는 내부적으로 동 요하며 수많은 호족들이 고려로 투항하고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아들 신검의 쿠데타와 견훤 본인의 고려로의 투항으로 빛의 속도로 나락 감...
의자왕의 복수를 외치며 후백제를 건국하여 후삼국 시대 를 연 견훤은
한때 왕건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가며 삼한을 통일할뻔했지만
말년 엔 아들 을 향한 배신감과 적개심에 적국 고려에 투항하여
자신이 일으킨 나라의 멸망에 자신이 크게 일조했으니
견훤의 혼란했던 심정을 그 누구도 가히 헤아릴 수 없지 않을까.
후삼국 시대 는 한국 사에서 가장 스펙타클했던 역 사가 아닐까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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