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적 매국노 윤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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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은 송병준, 이용구, 이완용을 내세워 일진회를 조직하는 등 합방의 불가피성을 부르짖으며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일본 은 대 신들을 매수하거나 회유 및 협박하여 일본 의 정책
에 협조하도록 하여 합방 계획을 어느 정도 진전시켜 나갔는데 이제 남은 것 은 고종을 포섭하여 허락
을 받는 일이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이어 제3대 통감이 된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는
여론의 귀추를 살피면서 합방을 마지막까지 순조롭게 진행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황실을 설득해야만 하였는데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황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을 것 으로 판 단되는 윤덕영을 그 적격자로 삼았다. 그리하여 윤덕영을 비밀리에 관저로 초대 하여
합방의 불가피성을 주지시킨 다음 적극적인 협력을 구하였다.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윤덕영에게 각의를
거쳐 조약을 체결할 시기가 되었으며 각 방면 대 표자의 합의가 이미 있었다고 말하고 조선의 이해(利害)
에 대 해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고종 및 순종의 양해를 얻는데 진력해 줄 것 을 부탁하였다.
윤덕영은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큰아버지 이며 순정효황후 아버지 이자 순종의 장인어른과 형제이다.
이완용은 고종에게 7일간 조석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면서 결단을 촉구하고 설득을 했지만, 고종은
대 꾸도 하지 않고 꿈쩍하지 않았다. 이런 고종의 단호함에 이완용은 포기를 하고 돌아갔고 이에 일본 이
실망했다고 한다. 이 때 윤덕영이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고 하여 고종에게 찾아가 부탁을 했지만 역 시
고종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협박하기 시작 했다. 덕수궁 모든 창고에 봉인(압류)을 붙히고 물건을 관리하던
상궁도 내쫓았는데 고종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윤덕영은 고종의 과거 여자 문제로 협박하기 시작 했다.
단호하고 대 꾸조차 하지 않던 고종이 주저 앉으면서 시선을 피하자 윤덕영이 고종 앞으로 가서 서서
말 하기를 "청을 들어주실 때까지 안 움직이겠습니다."라며 오후 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서 있었다고
하는데 고종은 차 마 그럴 수 없다고 순종을 보냈다. 윤덕영의 집착과 집요함에 두 손을 든 고종은
순종에게 만나게 했는데 옛 신하로서의 정이나 예의라고는 안 중에도 없는 태도가 상궁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조차 윤덕영의 냉혹함과 집요함에 치를 떨었다한다.
그 외에도 1917년 이완용이 고종에게 도쿄로 가서 다이쇼 덴노에게 "(한일합방) 고맙다고 직접 말해라"라고
하자 고종이 "난 그짓 절대 못 한다!"라고 반항하자 보다 못 한 윤덕영이 이왕가의 재산들에 직접 빨간딱지를
붙이고 궁인들에게 "이거 때면 가만 안 둔다"라고 엄포를 놨다. (현대 판 압류,압색 ㅎㄷㄷ)
그래도 고종이 거부하자 이젠 고종의 과거 여성 편력을 폭로하겠다 협박했지만 나는 못 한다며 계속 거부.
대 신 고종이 결국 순종을 도쿄로 보내겠다고 사실상의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에 대 해서 윤치호가 말하길.
"저자의 친일은 영어 로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고 평할 정도였다
-나무위키 일부 출처-
https://namu.wiki/w/%EC%9C%A4%EB%8D%95%EC%98%81
씁쓸한 조선왕조 실록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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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 문서에 도장찍히는 순간 에도 많은수의 권력가, 양반가, 씹선비들은 조선의 녹을 먹는 공신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백성들이 해가 되는 일을 설마 하겠느냐고 좀더 지켜보자며 중립기어를 박았다고 한다.
![](http://j9dan.com/data/editor/2308/16929450649469.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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