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우리는 그들의 삶을 잊었다
컨텐츠 정보
- 91 조회
- 0 추천
-
목록
본문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1075519.html?_fr=tw#cb
김올렉씨는 13만6천평(약 45만㎡)에 걸친 우크라이나 대. 평원을 일궈왔다. 유럽 일부 지역. 밀 공급을 책. 임진 농부이자 경영인이었다. 러시아의 폭격이 시작. 되고 그의 집과 회사. , 창고는 모조리 파괴됐다. 두달 뒤, 그는 경기 안. 산시 단원구 선부동. 고려인문화. 센터 앞에서 줄 서야 했다. 3㎏짜리 밀가루 한포대. 를 받는 배급줄이다. 전쟁은 그러하다.
2022년. 3월18일부터 광주, 청주, 인천, 안. 산, 경주, 안. 성으로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들이 들어왔다. 300일에 걸쳐 3천명 남짓 도착했다. 대. 부분 여성. 과 아동. 이며 징집 대. 상에서 벗어난 60살 이상 남성. 이 섞여 있을 뿐이다. 러시아의 공습이 집중됐던 오데사, 헤르손, 돈. 바스 지역. 에 살던 이들이다. 하루. 에도 여러번 방공호로 뛰어들어야 했고, 지하 대. 피소에서 여러 날을 지새우다 몰도바 국경을 걸어서 넘어왔다. 고려인이라 해도 한국. 은 쉽사리 허락되는 피난처가 아니었다. 먼저 들어와 있던 가족이나 친척이 애태우며 탄원한 결과 사증 발급이 완화되면서 입국할 수 있었다.
이잔나씨는 유치원생 둘째와 초등. 학생. 첫째를 데리고 한국. 에 왔다. 정보기술(IT) 엔지니어였던 남편. 은 전쟁에 차. 출됐고, 남아 있기로 결정한 부모. 를 뒤로하고 떠나왔다. 전쟁 전에는 주말이면 요트를 타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영어. 선생. 님. 이었다. 한국. 에서는 화장품 용기 제조 공장, 전자부품 조립 공장을 전전했다. 생활비가 부족해 작은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고, 큰아이가 학교. 를 포기하고 동. 생을 돌봤다. 걸음마를 뗀 아이를 그나마 안. 전한 공간. 에 두고자 부녀자 쉼터로 들어간 라리사씨도 월세를 마련하느라 공장을 전전한다
대. 부분 한부모. 가정인 고려인 피난민들은 정신적으로도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 지난여름 안. 산 고려인문화. 센터 상담사들은 피난민 청소년. 들을 상담했다. 스트레스 수치가 최고조였다. 18살 고등. 학생. 남자. 아이는 엉엉 울었다고 한다. 180㎝가 넘는 몸 안. 에 꾹꾹 눌러왔던 고통을 토해낸 것.이다. 일 나간 어머니. 대. 신 동. 생들을 돌보며 살림하느라 다섯평 원룸을 맴맴 돌던 아이는 인터넷 수업을 받는다지만 사실상 중단된 학업에 절망하고 있었다. 활동. 가들도 울었다.
고령인 고려인 2세들은 전쟁터로 돌아가고 있다. 조카의 원룸으로 피신해왔던 올렉씨도 떠났다. 잘. 정착해 산다고 여겼던 자식들의 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 짐을 싼다. 절망적인 결심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가 건강보험료다. 체류 기간 6개월이 지나면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월 14만원이 넘는다. 한국. 정부는 피난민들에게 일체의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피난민 65만명을 수용한 루마니아는 1인당 월 20만원씩 3개월간 지급하고 의료와 교육 서비스를 지원하며 민간시설을 개방해 살게 한다.
사단법인 너머는 고려인 피난민들에게 월세 보증금을 지원했다. 안. 산은 보증금 100만원이면 방을 얻을 수 있다. 대. 한적십자사의 해외재난 긴급 지원금 일부를 끌어왔다. 이불, 생리대. , 기저귀 등을 함께 받으며 고려인 피난민들은 ‘고국에 왔다는 실감을 합니다. 한국. 정부, 고맙습니다’라고 머리 숙였다. 활동. 가들은 차. 마 민간 지원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외교부 간담회부터 일선 공무원. 들까지 만나 피난민 지원을 호소해온 김영숙 안. 산 고려인문화. 센터장은 많은 이들로부터 한결같은 답을 들어왔다. ‘노력해보겠습니다.’
김 센터장의 말이다. “안. 성시의 경우는 35가구인데도, 왜 시가 품지 못. 할까요? 정부는 꼭 법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갖춰진 다문화. 가정, 외국. 인 노동. 자 지원 업무에 포함하면 됩니다. 시행령을 동. 원할 수도. 있고 지침이나 행정 사안. 으로 긴급 지원을 할 수 있어요. 지역. 주민으로 포괄해야 합니다.”
활동. 가들은 3인 가족 기준. 월 200만원씩 1년. 지원과 건강보험료 지원을 요구한다. 600가구면 1년. 에 148억. 원이다. 기초 한국. 어라도 배워서 일 나가고 아이들도 학교. 에 다닐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필요한 지원이다. 재작년. 에 교육부는 문화. 체육관광부·외교부와 해외 한국. 어 교육 지원 예산 236억. 원을 확보했다. 의지는 예산을 만든다.
김올렉씨는 13만6천평(약 45만㎡)에 걸친 우크라이나 대. 평원을 일궈왔다. 유럽 일부 지역. 밀 공급을 책. 임진 농부이자 경영인이었다. 러시아의 폭격이 시작. 되고 그의 집과 회사. , 창고는 모조리 파괴됐다. 두달 뒤, 그는 경기 안. 산시 단원구 선부동. 고려인문화. 센터 앞에서 줄 서야 했다. 3㎏짜리 밀가루 한포대. 를 받는 배급줄이다. 전쟁은 그러하다.
2022년. 3월18일부터 광주, 청주, 인천, 안. 산, 경주, 안. 성으로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들이 들어왔다. 300일에 걸쳐 3천명 남짓 도착했다. 대. 부분 여성. 과 아동. 이며 징집 대. 상에서 벗어난 60살 이상 남성. 이 섞여 있을 뿐이다. 러시아의 공습이 집중됐던 오데사, 헤르손, 돈. 바스 지역. 에 살던 이들이다. 하루. 에도 여러번 방공호로 뛰어들어야 했고, 지하 대. 피소에서 여러 날을 지새우다 몰도바 국경을 걸어서 넘어왔다. 고려인이라 해도 한국. 은 쉽사리 허락되는 피난처가 아니었다. 먼저 들어와 있던 가족이나 친척이 애태우며 탄원한 결과 사증 발급이 완화되면서 입국할 수 있었다.
이잔나씨는 유치원생 둘째와 초등. 학생. 첫째를 데리고 한국. 에 왔다. 정보기술(IT) 엔지니어였던 남편. 은 전쟁에 차. 출됐고, 남아 있기로 결정한 부모. 를 뒤로하고 떠나왔다. 전쟁 전에는 주말이면 요트를 타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영어. 선생. 님. 이었다. 한국. 에서는 화장품 용기 제조 공장, 전자부품 조립 공장을 전전했다. 생활비가 부족해 작은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고, 큰아이가 학교. 를 포기하고 동. 생을 돌봤다. 걸음마를 뗀 아이를 그나마 안. 전한 공간. 에 두고자 부녀자 쉼터로 들어간 라리사씨도 월세를 마련하느라 공장을 전전한다
대. 부분 한부모. 가정인 고려인 피난민들은 정신적으로도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 지난여름 안. 산 고려인문화. 센터 상담사들은 피난민 청소년. 들을 상담했다. 스트레스 수치가 최고조였다. 18살 고등. 학생. 남자. 아이는 엉엉 울었다고 한다. 180㎝가 넘는 몸 안. 에 꾹꾹 눌러왔던 고통을 토해낸 것.이다. 일 나간 어머니. 대. 신 동. 생들을 돌보며 살림하느라 다섯평 원룸을 맴맴 돌던 아이는 인터넷 수업을 받는다지만 사실상 중단된 학업에 절망하고 있었다. 활동. 가들도 울었다.
고령인 고려인 2세들은 전쟁터로 돌아가고 있다. 조카의 원룸으로 피신해왔던 올렉씨도 떠났다. 잘. 정착해 산다고 여겼던 자식들의 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 짐을 싼다. 절망적인 결심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가 건강보험료다. 체류 기간 6개월이 지나면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월 14만원이 넘는다. 한국. 정부는 피난민들에게 일체의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피난민 65만명을 수용한 루마니아는 1인당 월 20만원씩 3개월간 지급하고 의료와 교육 서비스를 지원하며 민간시설을 개방해 살게 한다.
사단법인 너머는 고려인 피난민들에게 월세 보증금을 지원했다. 안. 산은 보증금 100만원이면 방을 얻을 수 있다. 대. 한적십자사의 해외재난 긴급 지원금 일부를 끌어왔다. 이불, 생리대. , 기저귀 등을 함께 받으며 고려인 피난민들은 ‘고국에 왔다는 실감을 합니다. 한국. 정부, 고맙습니다’라고 머리 숙였다. 활동. 가들은 차. 마 민간 지원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외교부 간담회부터 일선 공무원. 들까지 만나 피난민 지원을 호소해온 김영숙 안. 산 고려인문화. 센터장은 많은 이들로부터 한결같은 답을 들어왔다. ‘노력해보겠습니다.’
김 센터장의 말이다. “안. 성시의 경우는 35가구인데도, 왜 시가 품지 못. 할까요? 정부는 꼭 법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갖춰진 다문화. 가정, 외국. 인 노동. 자 지원 업무에 포함하면 됩니다. 시행령을 동. 원할 수도. 있고 지침이나 행정 사안. 으로 긴급 지원을 할 수 있어요. 지역. 주민으로 포괄해야 합니다.”
활동. 가들은 3인 가족 기준. 월 200만원씩 1년. 지원과 건강보험료 지원을 요구한다. 600가구면 1년. 에 148억. 원이다. 기초 한국. 어라도 배워서 일 나가고 아이들도 학교. 에 다닐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필요한 지원이다. 재작년. 에 교육부는 문화. 체육관광부·외교부와 해외 한국. 어 교육 지원 예산 236억. 원을 확보했다. 의지는 예산을 만든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