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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경험했던 북한 실제 발포음을 듣고 난 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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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글을 적기전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다 전사하신 가족들의 슬픔과 숭고한 희생을

 

잊지말고 기억하기 위해 적었음을 알리며 지금도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은 잊혀지지 않기에 무거운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숭고한 피로 우리의 하루하루가 남아있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안녕 여러분

 

저는 2008년부터 2010년도 까지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 일은 이래서 이랬어` , 혹은 `저 일은 저래서 이랬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군복무를 하다보니 어떠한 일들은 이유가 있어 오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백령도`, 이름도 참 어떻게 보면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령`이 들어가니 스산한 기분도 주기도 합니다.

 

`무당도 기가 세서 입도 하지 못한다`, `기가 세서 근무를 스면 귀신을 많이 본다` 같은 군대 얘기도 참 많은 그런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런 국군이 지키고 있는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1박 2일에도 촬영이 왔었죠, 당시 그 덕분에 많은 인지도가 올라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바라지만, 현실에는 비극과 슬픔도 공존하는 건가요

 

 

 

중사 (진) 안영우 반장님은 2009년도 수색 중대 해안에서 헬기레펠을 점검 하던 도중,

 

바다로 낙하, 이안류에 휩슬려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셨습니다.

 

그날 아침에도 로프를 몸에 두르고 다니신걸 봤었는데, 사고 직후 바다로 모든 중대원들과 달려나가 

 

허망한 바다를 바라보던 그날

 

백령도는 지금껏 보지못한 황천과 폭풍으로 저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수색을 하려 보트를 접안하려고 해도 파도가 거세 도저히 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날밤 수십차례의 천둥과 번개의 섬광,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는 그런 어떤 날이었습니다.

 

결국 저흰 반장님을 찾지 못하였고, 몇 일뒤 반장님의 결혼을 약속한 사모님과 함께

 

백령 병원의 어느 한 구석에서 영혼식을 치루며 반장님의 영혼을 달래드리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시작이었습니다.

 

(아래 글부터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읽기 싫은 분은 안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2009년도에 부대가 공사를 하여 5개 중대로 이루어져 있던 저희 부대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유격 훈련장으로 (반장님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죠)

 

사격 훈련장으로 (총기사고가 일어났었습니다. 병기 수리를 하던 인원이 총열에 닦개를 잊고 수입하여, 실사격 훈련중 병기가 폭팔하였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큰 사고였죠)

 

저는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득 터를 함부로 옮기면 안된다, 라는 생각이 얼핏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의 일입니다.

 

어느 때랑 상관 없이 주계에 중식식사 행렬을 따라 밥먹으러 들어가려고 기다리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낮은 포성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펑펑` `퍼버벙` `드르륵 드르륵`

 

군대와서 밥먹은 몇백번의 기억 중 이런일은 없었기에 낯설다라는 생각도 잠시

 

오늘 점심 메뉴에 정신이 팔려있던 와중

 

"현재 아측 경비정과 북측 경비정 사이의 교전이 발생 했으니 즉시 중대로 복귀하여 완전무장을 채결하고 중대에 대기한다

 

먹던 식판은 그대로 두고 복귀할것"

 

"다시 말한다 현재 북한 경비정과 교전중이니 중대로 복귀할것"

 

`대청해전` 이 일어 나게 된 겁니다.

 

 

 

 

 

바로 그 이후 중대 내의 방공호로 피신하여 이게 무슨일인가 떨더름한 표정으로 한두시간 대피 하다 다시 복귀하였지만..

 

한국군이 먼저 북한경비정을 공격한 것도, 우리 피해는 적다고 말하는 사실들도

 

이게 맞는건가.. 우리가 공격당하던게 맞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공군 f-15 전투기 (태어나서 처음봤습니다, 멋있다고 느껴진건 제가 철이 없어서였던거 같습니다)

 

가 가을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우리의 압도적 군사력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제 군생활도 흘러갔고, 어느덧 전역을 하게 되엇습니다.

 

제가 전역을 3월2일에 하였습니다.

 

대학교를 복학하여 즐겁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던 도중, 갑자기 다급하게 후배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지금 빨리 뉴스를 봐라"

 

 

 

 

저는 처음에 `이게 뭔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해군에는 어떤 배가 있고 무슨 무슨 이름이 있는지 잘모릅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바다를 보면 떠있던 늠름한

 

호위함 한척을 바라보는게 삶의 즐거움 이엇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가라 앉고 있다는 겁니다.

 

그 배의 이름은 천안함 이었습니다.

 

 

 

 

천안함의 최초 목격 부대가 바로 저희부대 63대대.

 

이 일도 여러가지 썰이 있기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엄청 떨더름하고 언급하기 부담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저의 부대 앞을 지켜주던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분하고 너무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연평도 포격사건이 있었고,

 

그럼에도 정부는 `친북` 정책, 

 

평화 통일 정책등 가슴이 답답하고 세상이 왜 이런 것인지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도 다 이유가 있었겠지만요.

 

아무튼 이번 강릉 사건으로 불안해 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우리를 지키는 수 많은 국군장병들을 생각하며

 

평화를 염원하고 `작은 오차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 사고`를 예방하고 

 

안보에도 한치 흐트림 없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평화와 안녕은 수 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을 한번더 가슴에 새기고 하루를

 

감사히 생각해야할것 같아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저도 오늘 하루를 지낼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해야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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