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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가 10년넘게 진행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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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2010년대 이후 

한석규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뿌리 깊은 나무나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 등 

드라마에서 활약상을 주로 떠올릴 것임 

(물론 그 기간 영화도 꾸준히 찍으시긴 했지만) 

아무래도 드라마판 성적이 유독 두드러지다 보니 그럼 

오죽하면 2010년대 SBS 드라마를 말할 때 

한석규란 존재는 꼭 들어간단 말도 있을 정도니까 


90년대 중후반 

충무로 섭외 1순위




하지만 90년대 중후반 영화판에서 

한석규의 입지는 압도적이였던 걸로 평가됨 

그도 그런 것이 80년대나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시장에서 할리우드에 눌려있던 한국 영화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고 재도약한 시기 주역이기도 하고 

원탑으로 전체 판 자체를 끌고 갔다고 함 

당시 충무로 시나리오의 90%가

1순위로 한석규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 




특히나 90년대 중후반까지 필모를 보면 

장르의 다양성도 그렇지만 

그 장르에서 혹은 한국 영화 전체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된 작품들이 즐비하다 보니 

동료 배우들은 어떻게 저런 좋은 작품만 골라서 나올까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함 

여기도 많으시겠지만 시네필들중에 

고전 영화 특히 90년대 한국 영화 파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들 찾아보신 분들도 있을 것임  





그래서 1997년 당시 만 29세의 조선일보 모 기자 (?)는 

이러한 한석규 신드롬에 대해 분석하면서 

작품을 골라내는 심미안을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음 

당시 충무로 섭외 1순위인 만큼 온갖 시나리오가 

그에게 쏠리는 상황에서 그걸 골라내는 것도 능력이기 때문 

(뜬금포지만 동진 옹은 30대 때 보다

4050일 때 더 회춘하신 게 느껴짐) 



실제로 당시 한석규 본인도 각종 인터뷰에서 

이러한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함 

그래서 시나리오가 맘에 안 들면 

친분 여부나 거액의 제의에도 가차 없이 거절해 

주변 원망도 많이 들었단 후문 

그래서 배우가 연기만 하면 그만이지 

너무 따진다며 억까하는 기사도 나올 정도였다고 함 


1999년 막동이 공모전 시작 

한석규가 상금 전액 후원 






그러던 중 한석규가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바로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해마다 상금 전액을 한석규가 후원하기로 결정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금액이었다고 함 

여기서 막동이란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초록 물고기에서 한석규가 열연한 캐릭터 이름으로 

한석규가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라고 함 

실제로 공모전 이름뿐만 아니라 

공식 팬클럽 이름도 막동이라고 할 정도




아무튼 이와 관련해 당시 인터뷰에서 

한석규는 한국 영화의 큰 문제점으로 

시나리오 부재와 쉽게 보는 풍토를 지적하며 

(사실 이건 지금도 남아있는 듯하고) 

좋은 시나리오 발굴을 위해 나설 것이라 밝힘 

또한 그간 작품들 성공으로 얻은 이익을 

충무로에 조금이라도 환원하는 차원이라고 말함 





그렇게 뽑힌 제1회 당선작이 

안재훈의 제노사이드란 작품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불치병을 치료할 

신약이 개발됐지만 이 약의 부작용으로 

인류가 혼돈을 겪는다는 내용으로 

50억 규모의 영화화까지 결정됐고 

주연으로 한석규가 캐스팅됨 

당시로선 상당한 기대작이였다고 함 


제노사이드 등 연달아 2편 무산 

(정말 중요한 시기에) 3년간의 공백기 


하지만 제노사이드는 끝내 무산됨 

이에 대해 한석규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시나리오 수정 문제 때문이라고 함 

제노사이드만 무산된 게 아니라 

광우란 작품도 무산되는데 제작사 쪽 문제라고 함 




그러다 보니 한석규 행보에도 제동이 걸리는데 

시나리오 선정 자체가 정말 신중한데 

그렇게 어렵게 고르고 고른 작품들이 

연달아 무산되다 보니 공백기가 길어짐 

좀 아쉬운 점이 하필 저 시기 자체가 

한국 영화가 쉬리 이후 급성장하던 시기였단 점 

(물론 거품도 상당한 시기였다고 하고) 

저 중요한 시기에 본의 아니게 쉬다 보니 

90년대 중후반과 비교하면 입지가 많이 약화됐다고 함


 



게다가 3년 공백기 끝에 컴백한

이중간첩이란 작품이 실패하면서 

마음 고생도 많이 한걸로 알려짐 





하필 저 시기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로도 고생하는데 

군 시절 주특기가 60mm 박격포였는데 훈련받다 

다치고 수술까지 받아 결국 상병 전역했는데 

이중간첩 촬영하면서 또 재발해 수술하고 고생했다고 함 

여기에 연기에 대한 회의까지 밀려와 

연기를 왜 하나, 이렇게 연기하는 게 맞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라고 알려짐 






하지만 그런 힘든 시기 포함 

10년간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만큼은 

꼭 참석해서 힘을 실어줬다고 함 

그만큼 공모전 자체에 상당한 애정이 있었단 소리 




공모전 당선작 중 실제 영화화된 작품으론 

박대민 감독의 그림자 살인 (7회 당선작) 

김정훈 감독의 탐정 시리즈 (8회 당선작) 등이 있음 

왜 이 정도밖에 없냐 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는데 

원래 이런 공모전 수상작들도 

실제 영화, 드라마화되는 게 극소수 작품이고 

되더라도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다 보니 그럼





그리고 영화 남자 사용 설명서 (공동 집필) 

KBS 드라마 대박부동산, 혼례 대첩을 집필한 

하수진 작가도 막동이 시나리오 6회 당선자 출신임 

(2020년대 이후 KBS 주중 미니시리즈가 죽 쑤고 있는데 

대박부동산, 혼례 대첩은 그나마 선방한 축에 속함) 

그 밖에도 현직 작가 중에  

막동이 시나리오 당선자 출신이나 

도전했던 분들 여럿 계심 




그렇게 10년 넘게 이어져 오던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은 

2010년 12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됨 

기획할 때부터 10년 정도 하기로 해서 그런 건데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긴 했지만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평가됨 




한석규의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한창 한국 영화가 재도약하고 성장했던 시기 

상당히 의미 있었던 프로젝트였다고 생각됨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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