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돌아온 후 정신병자 취급 당한 참전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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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뉴기니아에서 오쿠자키 겐조가 소속된 제 36연대는 보급비용이 많이든다는 일본정부의 판단아래 강제로 보급을 끊어버려 병력 대부분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아사하는 사태를 맞이한다.
종전 후 그는 자기만 살아돌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전우들의 무덮앞에서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을 것이다" 라는 맹세를 하게된다.
그는 2차대전 최종책임자인 히로히토 일왕에 대한 사과요구를 수 십년동안 하였으나 사과는 커녕 정부는 은폐하기 바빴고 사회는 그는 정신병자 취급하였다.
결국 82년 그는 일왕을 저격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미수에 그치며 14년동안 감옥에서 살아가게 된다.
"일왕이 2차대전 사과를 함으로써 제국주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자"는 깨어있는 지식인들도 종전 이후 존재하였지만, 일본정치권의 탄압과 극우단체의 테러 등으로 90년대 이후 세력이 약해졌다.
이같이 "일왕에게 전쟁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정치인들은 우익단체의 테러 대상이 되었다.
'모토지마 히로시'는 해당 발언 이후 1990년 차안으로 뛰어들어온 우익테러범에게 난자당하는 참변을 당한다.
"제국주의 일본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자"고 주장했던 정치인이 '제국주의 일본'을 그리워한 청년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
이후 소수였던 깨여있는 일본지식인들도 입을 닫아버리며 '일왕책임론'은 일본사회에서 묻혀지게된다.
1989년 결국 '히로히토 일왕'은 끝내 전쟁에 대한 사과없이 사망하게 되고 수 만명이 황거에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통곡하였다.
(일왕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땅에 머리를 연달아 박으며 통곡하는 한 일본인의 모습)
일왕테러를 감행해 일본사회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14년동안 감옥살이를 한 '오쿠자키 겐조'는
2005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가 사망한 2005년엔 "전쟁의 책임이 있다"며 사과받고 싶어했던 '히로히토 일왕'이 '독가스 살포와 731 마루타 실험'을 허가해준 사실이 밝혀지며 '일왕 전쟁책임론'이 다시 불거지게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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